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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고랜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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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안정화 작전 === 2001년 12월 20일 유엔 결의에 따라 아바나와 그 주변의 치안을 맡을 국제안보지원군(ISAF)이 창설되었다. 루이나가 지휘를 맡았고 NLTO 회원국과 [[미합중제국]] 등 18개국이 병력을 보냈다. ISAF의 초기 임무는 아바나 수도권으로 한정되었고, 그 밖의 지역에서는 루이나군이 「불변의 서약 작전」의 틀에서 알자미아와 탈레반 잔존 세력을 추적했다. 고랜드 원정사령관 대니얼 P. 크로웰 중장이 두 작전을 함께 지휘했다. 2002년 3월 루이나군은 동부 팍티아주 샤히코트 계곡에 숨어든 탈레반과 알자미아 잔당을 소탕하는 「그물 작전」을 벌였다. 루이나군과 공산 정부군, 동맹국 특수부대 2,000여 명이 투입된 이 작전은 전쟁 초기 최대 규모의 지상전이었다. 해발 3,000m 능선에서 벌어진 고지전에서 루이나군 8명이 전사했고 적은 수백 명이 사살되었으나, 상당수는 유고랜드 국경 너머로 빠져나갔다. 같은 해 6월 아바나에서는 벨포르 협정의 「민족 화해 과도기」 조항에 따른 「민족 화해 회의」가 열렸다. 공산 정부와 판지시르 세력, 탈레반에 등을 돌린 남부 부족 지도자 등 1,600여 명이 모인 이 회의에서 무자헤딘 출신 세력의 정치 참여 방식이 정해졌다. 이들은 인민민주당의 통일전선 조직인 「민족조국전선」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내각과 국민회의에 자리를 얻었고, 판지시르 세력의 병력은 정부군에 편입되었다. 탈레반에게는 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 시기 루이나의 가장 큰 고민은 고랜드 정부군이었다. 정부군은 사비에트식 편제를 유지하고 있었고 각급 부대에 인민민주당의 정치위원이 배치되어 있었다. 루이나 의회는 2002년 국방수권법에 "공산당 조직이 지휘에 관여하는 군대에 대한 직접적 무기 지원"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었다. 이른바 「정치위원 조항」이다. 이 때문에 루이나의 정부군 지원은 한동안 훈련과 비살상 장비, ISAF 신탁기금을 거친 간접 지원으로 제한되었고, 정부군의 무기와 탄약은 여전히 사비에트에 기댔다. 루이나군 교관들은 사비에트제 소총을 든 병사들을 루이나식 교범으로 훈련시켜야 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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